
글 : 도로시연구소 대표 문현선
출처 : 사회적가치연구원 SV Hub (https://svhub.co.kr/)
올해는 무덥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뜨겁고 긴 여름을 보냈다. 기록적 폭염, 극한 폭우, 최악의 가뭄 등 극단적 기후 변화를 보여주는 뉴스도 연일 이어져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최근 우리나라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차례로 피어나던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고 지고, 봄과 가을은 부지런해야 느낄 만큼 짧게 스쳐 지나가고 있다. 사계절의 뚜렷함을 자랑하던 우리나라의 풍경이 기후위기의 그늘 아래에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를 꿈꾸며 제정된 UN 기념일 '세계 푸른 하늘의 날'
남부 지역에 폭우가 내린 지난 9월 7일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흰 이슬이 내려 가을이 깊어지는 절기라는) ‘백로(白露)’이자, 우리나라가 제안하여 채택된 최초의 UN 기념일 ‘푸른 하늘의 날’이었다. ‘푸른 하늘의 날’은 우리 국민과 정부가 함께 이뤄낸 성과로, 대기오염 문제를 알리고 전 세계가 함께 깨끗한 공기를 지키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 2019년 8월 국가기후환경회의(위원장 반기문)는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으로 유엔 기념일 지정을 위한 결의안 추진을 제안
• 국민정책참여단(500여명)의 학습,숙의, 전문가 컨퍼런스, 국민대토론회 및 권역별 토론회를 통해 의견 수렴
• 2019년 9월 뉴욕에서 개최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는 미세먼지 등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국제협력과 유엔회원국 등 이해관계자들의 행동 촉진을 위해 ‘세계 푸른 하늘의 날’지정을 제안
• 2019년 12월 우리 정부의 결의안 공식 제출을 통해 제74차 유엔 총회에서 매년 9월 7일을 ‘푸른 하늘을 위한 국제 맑은 공기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채택
• 2020년 2월 ‘푸른 하늘의 날(9.7)’을 유엔 기념일 뿐만 아니라 국가 기념일로도 지정토록 요청
• 2020년 8월 ‘푸른 하늘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신규지정하는 등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 국무회의 의결 및 시행
(출처 : 환경부, 외교부 보도자료)
사실 오늘날의 현실은 공기보다 포괄적인 기후변화가 더 절박한 의제로 부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다양한 집단과 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여 해결책을 모색하고 고민한 끝에 제정된 국제기념일인 ‘푸른 하늘의 날’은 여전히 귀하고,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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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각종 보고서와 토론회를 통해 수많은 이론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의 실천은 더디기만 하다. 대부분의 환경 관련 토론장에서조차 불필요해 보이는 플라스틱으로 가득하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와 생태 전환의 시대임을 인식하고 있다. 각종 교육과 보도를 통해 지성화했다면, 참여하는 생태 시민들과 함께 앞장서서 그 변화를 대중화하고, 생활화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 '푸른 하늘'을 향한 우리의 질주(Racing for air)
유엔환경계획(UNEF)에서 정한 올해 ‘푸른 하늘의 날’주제는 ‘Racing for air’로 맑은 공기와 스포츠, 인내, 형평성을 연결하면서 문제 중심에서 해결 중심으로 과정을 전환하고 빠르게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았다. 우리 정부는 미세먼지 개선, 기후재난 대응을 위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절박한 마음을 담아 주제문을 ‘푸른 하늘을 향한 우리의 질주’로 정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환경부 산하기관 및 지자체가 주관하는 다양한 행사가 이어졌다. 기념식, 시상식, 그림공모, 정책홍보, 온라인이벤트 및 캠페인, 각종 협약, 체험, 토론, 주제발표, 국제컨퍼런스를 비롯해 의미와 실천 방법 등을 담은 유튜브 영상, 웹툰 등의 각종 홍보물까지 폭넓다. 올해의 주제에 맞춰 모두가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이다. 화려한 행사는 마치 이상 기후로 한꺼번에 피고 지는 봄꽃처럼 순식간에 지나가고, 현장에는 여전히 기념품과 퍼포먼스를 위한 플라스틱이 넘쳐난다.
가을을 맞아 과잉 포장된 선물이 오갈지도 모르는 추석도 다가 오고 있다. ‘푸른 하늘의 날’이 우리나라가 만든 기념일임을 잊지 말고,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선물을 함께 고민해 보자.
‘푸른 하늘의 날’을 위한 대기오염 해결의 답은 하늘에 있지 않다. 우리는 두 가지 현실 앞에 서 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친환경 소비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적게 쓰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길이 옳은지 설득하려는 뜨거운 토론장이 기대된다.
잠시 멈추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 매년 ‘푸른 하늘의 날’을 맞이하겠지만 이제 그 날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예전과 사뭇 달라질 것이다. '백로' 무렵에 밤기온이 내려가 풀잎에 맑은 이슬이 맺히는데, 이 이슬을 먹으면 오래된 속병이 낫는다고 한다. 우리의 작은 실천이 이슬이 되어 뜨거운 지구의 속병을 치유하는 ‘푸른 하늘의 날’이 되기를 바란다.
